“미국 1위 헬파이어 무기 대신에” 한국산 비궁을 택한 의외의 나라
||2026.04.12
||2026.04.12
중동 해역이 드론과 소형 고속정으로 들썩이는 사이,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헬파이어 대신 한국산 70mm 유도로켓 ‘비궁(수출명 포니아드)’을 택했고, 이제는 아예 자국에서 대량 생산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LIG넥스원과 사우디 국방부는 비궁 현지 생산·기술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초안을 두고 구체적인 조건을 조율 중이며, 이는 단순 무기 수입국이던 사우디가 K-방산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방산 자립에 나서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이미 비궁은 사우디·UAE 해군 고속정과 초계함에 실전 배치되어 수년간 운용되면서 ‘검증된 무기’로 입지를 굳힌 상태다.
사우디가 처음 눈을 돌린 것은 미 해군이 쓰는 AGM-114 헬파이어와 그 해상형 파생형, 그리고 저렴한 APKWS 유도로켓이었다. 예멘 내전과 홍해·아덴만 일대에서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무인 보트·소형 고속정 위협에 대응하려면, 고가의 대함미사일이 아니라 대량으로 쏟아부을 수 있는 중저가 정밀무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당 수억 원대에 이르는 헬파이어 계열은 대량 운용이 부담스럽고, APKWS는 미국산이라 기술 이전·현지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성능은 충분하고, 가격은 낮고, 기술 이전까지 가능한” 무기로 비궁이 낙점됐다는 분석이 중동 군사 전문 매체와 택티컬 리포트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비궁은 2.75인치(약 70mm)급 유도로켓으로, 국방과학연구소와 LIG넥스원이 해상 이동표적 대응용으로 2016년 개발을 완료했다. 소형 직경 안에 시커·조종장치·신관을 압축해 넣어, 사수가 최초 조준 단계에서 표적만 찍어주면 이후에는 로켓이 스스로 추적하는 ‘발사 후 망각(fire‑and‑forget)’ 방식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장거리 대함미사일처럼 한 발 한 발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다수 표적에 동시 대응이 가능해, 소형 고속정·해상 드론·저가 표적을 상대로는 “1발당 효과가 가장 뛰어난 무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해상 자폭 드론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고가 미사일 대신 다연장 유도로켓으로 저가 표적을 ‘떼사냥’하는 개념에 딱 들어맞는 셈이다.
비궁은 2017년 한국 해병대 해안방어부대에 배치되어 기존 해안포를 대체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후 미 해군 요구에 따라 해상 운용 시험까지 진행됐다. 2024년 림팩(RIMPAC) 훈련에서는 한국 해군 천자봉함에 탑재된 비궁 6발이 모두 표적을 명중해 미 국방부 최종 평가를 통과했으며, 이 시험이 성공하면 한국 완제품 유도무기가 미국에 수출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LIG넥스원은 “미국이 인정해준 무기라면 아직 수출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이 커질 수 있다”며, 비궁을 지상·해상·공중 다목적 플랫폼에 통합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번에 비궁 현지 생산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비전 2030’이 있다.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 방산 국산화 비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완제품 수입 중심이던 구조에서 부품·탄약·플랫폼 생산까지 자체 역량을 넓히려 한다. 비궁은 유도 시커 등 핵심 기술을 제외하면 대다수 공정이 기술 이전 가능해, 방산 자립의 입문 코스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IG넥스원이 천궁-II 32억 달러 수출 이후 리야드 현지 사무소를 확장 이전하며 사우디 방산기업들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것도, 비궁·천무 탄약 현지 생산 등 ‘탄약 자립 패키지’로 이어질 발판을 두텁게 다지는 행보로 해석된다.
현재 비궁은 주로 4연장 발사대를 중심으로 소형 고속정과 해병대 차량에 운용되고 있지만, 사우디가 대량 양산에 나설 경우 천무처럼 12연장·24연장 대형 발사대 개발이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켓 한 발이 길이 2m, 무게 14kg대에 불과해, 무인 수상정(USV)이나 경량 순찰정에도 다수 장착이 가능하고, 기관총만 달려 있던 기존 함정들을 ‘유도 무기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예멘 해역에서 저가 드론과 쾌속정을 상대로 소모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우디 해군이 비궁을 핵심 탄약으로 삼을 경우 “총은 이미 충분히 많고, 이제는 탄약을 무한에 가깝게 확보하는 단계”로 진화하는 셈이다.
비궁 현지 생산이 현실화되면, 이는 한 무기 체계 수출을 넘어 K-방산이 사우디 방산 구조 전체에 스며드는 계기가 된다. 사우디는 이미 천궁-II·천무를 도입했고, 비궁까지 현지 생산 라인을 갖추면 방공·포병·근접방어 체계의 상당 부분을 한국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미국·유럽산 무기에 비해 정치적 변수로 군수 지원이 끊길 위험이 낮고, 기술 이전을 통해 자국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오일머니로 무기만 사오던’ 과거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협력이다. 미국 1위 헬파이어 무기가 상징하던 시대에서, 사우디가 선택한 것은 더 싸고 유연하며 동맹의 성격까지 바꾸는 한국산 유도로켓과 그 주변에 얽힌 방산 생태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