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아니었다” 한국과 뒤에서 진짜 전쟁 중이라는 의외의 나라
||2026.04.12
||2026.04.12
요즘 한국 방산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아니라 독일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 이어 루마니아 전차 사업까지, 유럽 대형 프로젝트마다 한국과 독일이 정면충돌하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가 추진 중인 65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 차세대 전차 사업은 K2 흑표와 레오파르트2A8·KF51 판터가 맞붙는 상징적인 ‘2차전’으로 주목받는다.
루마니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노후 전차를 빠르게 바꿔야 하는 압박 속에 있다. 현재 루마니아군이 운용하는 TR-85M1·TR-85·구형 T-55 계열은 전자장비·사격통제·방호력에서 현대 서방 전차와 큰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루마니아 육군 드라고슈-두미트루 이야코브 중장은 영국 IAV 2025 콘퍼런스에서 “수개월 내 중요한 이정표에 도달할 수 있다”며, 전차 사업자 선정 절차가 상반기 안에 가시화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이번 사업은 전차 216대와 지원차량 150여 대 도입, 총 65억 유로 규모로 추산되며,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이 핵심 조건이다. 루마니아 방산업체들이 차체·포탑 구조물 제작, 일부 광학·전자장비 생산, 조립·체계통합·시험에 직접 참여하는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단순히 전차를 사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국 내 전차 생산·정비 기반을 키우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후보들은 모두 “빨리 납품하면서, 공장과 기술도 함께 가져가겠다”는 패키지 제안을 앞세우고 있다.
후보 전차들은 저마다 분명한 색깔을 가진다. K2 흑표는 폴란드 대량 수출로 유럽에서 이미 실전·현지 생산 경험을 검증받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빠른 납기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레오파르트2A8은 다수 나토 국가가 운용 중인 유럽 표준 전차로, 탄약·정비·훈련 인프라 공유와 EU 방위금융 활용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KF51 판터는 130mm 주포·무인포탑 등 차세대 콘셉트를 자랑하지만, 아직 양산·실전 운용 사례가 없어 도입 일정과 리스크가 가장 크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결국 루마니아의 선택은 ‘당장 쓸 수 있는 검증된 전차’와 ‘기술적으로 야심찬 새 플랫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문제가 된다.
시장에서는 독일이 유럽 금융지원이라는 카드를 쥐고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루마니아가 유럽 평화기금(EPF) 등 EU 방위금융을 활용할 경우, 유럽산 전차를 도입할 때 더 좋은 조건의 신용·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가장 큰 무기는 ‘납기 신뢰도’다. 폴란드에 K2·K9·FA-50을 공급하면서 약속한 물량을 제때 채운 경험, 연간 120~200대 수준의 K2 생산능력은 독일의 2~4배에 달해,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루마니아에 매력적인 옵션이 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루마니아는 “싸게, 빨리, 하지만 유럽 체계 안에서”라는 서로 충돌하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루마니아가 요구하는 현지 생산·기술 이전 모델은 한국에게도 낯설지 않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에서 K2PL을 현지 조립·생산하고, 부품을 점차 폴란드 업체에서 조달하는 구조를 구축해 ‘함께 만든다’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줬다. 독일 역시 유럽 전역에 광범위한 부품·생산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만, 이미 다수 국가 물량을 처리하느라 생산 라인이 포화에 가까운 상태라 루마니아가 원하는 시점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이 때문에 현대로템이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에도 K2 생산라인을 구축하면, “납기+현지 생산”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드문 선택지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루마니아 전차 사업은 한국-독일 방산 경쟁의 한 전투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12척 규모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 한화오션과 독일 TKMS가 충돌하고 있고, 이라크의 최대 250대 K2 도입 논의 역시 독일 전차와 간접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폴란드·노르웨이·체코·루마니아로 이어지는 유럽 시장에서, 한국은 성능·가격·납기·현지 협력 패키지로, 독일은 기술 신뢰성과 유럽 공급망·금융 지원으로 맞서는 ‘장기전’ 구도가 굳어지는 중이다. 어느 쪽이 루마니아에서 웃느냐에 따라, 이후 중동·동유럽·북유럽 대형 사업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 업계는 이번 계약을 ‘K-방산 vs 유럽 방산’ 본격 승부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루마니아는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긴장, EU와 나토의 요구, 국내 방산 육성이라는 세 축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K2를 선택하면 빠른 전력화와 현지 생산 경험을 한꺼번에 가져갈 수 있지만, 유럽 방산생태계와의 결속 측면에서 독일 전차보다 정치·외교적 설득이 더 필요해진다. 반대로 레오파르트2A8이나 KF51을 택하면 유럽 금융과 네트워크에는 유리하지만, 전력 공백과 납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폴란드에 이어 또 하나의 유럽 ‘레퍼런스’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이자, 동시에 유럽 규제·정치환경 속에서 K-방산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