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용돈만 5천만원 받은 16살 연상남과 결혼한 미스코리아의 충격 근황
||2026.04.27
||2026.04.27
화려한 왕관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다. 1984년 미스코리아 ‘태평양’으로 당선되며 대한민국 대표 미녀로 등극했던 임지연의 삶이 그러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미인 대회인 ‘미스 아시아 태평양’에서 2위에 오르며 전성기를 누렸던 그녀의 인생사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굴곡으로 가득 차 있다.
임지연의 시련은 첫사랑에서 시작됐다.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그녀는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이었던 16살 연상의 유명 성형외과 의사와 사랑에 빠졌다.
방송사 국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갈길이라도 사랑을 택하겠다”며 열애를 이어갔지만, 돌아온 것은 남자의 갑작스러운 다른 여성과의 결혼 발표였다. 배신감에 삭발까지 감행하며 방황하던 그녀는 도망치듯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에서 만난 첫 번째 남편은 부동산 재벌이었다. 결혼 생활은 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매달 개인 통장으로 5,000만 원의 용돈이 들어왔고, 생일에는 건물과 외제차를 선물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남편은 “여자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남편이 능력이 없을 때뿐”이라며 그녀의 사회 활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외출 시에는 늘 기사와 비사가 동행했고, 유명 유흥가인 아카사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결국 5년 만에 ‘새장 속의 새’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개인 자산을 쏟아부어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으나, 이 또한 커다란 시련이 되었다.
당시 평균 제작비의 3배가 넘는 1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지강헌 사건을 다룬 영화 ‘휴일을 찾는 사람들’을 제작했지만, 후반 작업 비용 부족 등으로 인해 끝내 극장에 걸지 못한 채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두 차례 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총 세 번의 파경을 맞이하는 등 평탄치 않은 개인사를 겪어야 했다. 현재 임지연은 서울에서 양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해 있다.
과거의 화려한 미스코리아가 아닌, 매일 새벽 시장에서 직접 식재료를 고르는 ‘억척 사장님’의 모습이다. 19인치 허리를 유지하던 미모 뒤에 숨겨진 굴곡진 세월을 이겨낸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