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박찬욱은 왜 예술과 정치를 말했나
||2026.05.14
||2026.05.14
“정치와 예술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와 예술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지난 13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막을 올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열린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예술과 정치를 구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박 감독의 발언은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빔 벤더스 감독의 언급을 소환하며 칸 국제영화제가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에도 얼마든지 문을 열어 두고 있음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찬욱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매우 정제된 언급으로 정치적 주장을 담은 예술의 균형을 떠올리며 예술은 결국 세상을 향한 발언을 담아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의 적이라고 인식돼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경청할 만한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런 영화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이 같은 발언과 그에게 던져진 질문은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빔 벤더스 감독이 내놓은 발언이 일으킨 논란과 관련 깊다.
빔 벤더스 감독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에서 “영화인들은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정치적이 되면 우리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영화계의 거센 비판을 불렀다. 당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 창작과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둘러싼 세계적 비판이 일고 있었을 때였다. 이에 적지 않은 영화관계자들이 이 같은 상황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더욱이 빔 벤더스 감독의 발언은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그동안 정치적·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를 적극 소개해오며 위상을 쌓아왔다는 평가와 맞물려서도 비판받았다. 실제로 틸다 스윈튼, 하비에르 바르뎀 등 배우를 비롯한 80여명의 영화관계자들이 이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다만, 빔 벤더스의 말이 정치적 선동이나 프로파간다(선동) 영화를 경계하려는 것일 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미국 영화전문지 데드라인 보도에 따르면, 칸 국제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도 올해 축제 개막 전말 기자회견에서 “빔 벤더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는 사실 정당하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치성은 스크린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칸 영화제가 말하는 바이다. 영화제에서 정치적 질문이란 무엇보다도 작품이 상영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면서 “공식 초청받은 영화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든, 밝히지 않든 자유”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이날 칸 국제영화제 개막과 함께 올해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에게 던져진 질문도 어쩌면 예고된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박 감독은 “아무리 우리가 훌륭한 정치적 주장을 말하고 싶어도 그것이 예술적으로 탁월하게 성취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프로파간다에 불과할 것이다”면서 “결국 예술과 정치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것이 예술적으로 잘 주장된다면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이 이끄는 심사위원단에 포함된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예술의 본질 중 하나는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면, 결국 창의성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곳에서 진실과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으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사회성 강한 작품을 연출해온 켄 로치 감독의 시나리오를 쓴 폴 래버티 작가도 당당히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전쟁과 갈등이 심화하는 세계에서 칸 국제영화제 같은 문화 행사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가자지구의 집단학살과 수많은 끔찍한 분쟁처럼 체계적인 폭력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양성과 상상력, 섬세함, 아름다움, 영감을 기념하는 영화제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저를 압도한다”는 말을 내놨다고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전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이 이끄는 심사위원단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를 비롯해 올해 경쟁부문 초청 상영작 22편을 대상으로 심사해 오는 24일 새벽 폐막식을 겸한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등을 수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