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서 2천명이 넘는 국민들의 생명을 살린 연예인 정체
||2026.07.06
||2026.07.06
드라마와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개성 있는 연기로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 정동남. 하지만 그에게는 화려한 조명 아래 배우라는 직업 외에, 평생을 바쳐온 또 다른 천직이 있다. 바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민간 인명구조 전문가의 삶이다.
그가 지난 50여 년간 국내외 대형 재난 현장을 누비며 구해낸 생명은 2,000여 명에 달하며, 그의 손으로 직접 수습한 시신만 해도 580여 구에 이른다. 스크린 뒤에 숨겨진 그의 헌신과 눈물의 기록을 짚어본다.
정동남이 이토록 인명 구조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가슴 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됐다. 1969년, 그의 친동생이 중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강에서 익사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는 동생에게 수영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가난했던 집안 형편 탓에 강에 빠진 동생의 시신조차 제때 찾지 못할 뻔한 비참한 상황을 겪었다. “내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한 때문에, 물에 빠진 사람만큼은 무조건 내 손으로 다 건져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 교관 출신이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민간 구조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사비를 털어 구조 장비를 마련하고 사단법인 한국구조연합회를 이끌며 반세기 동안 구조 활동에 매진해왔다.
그는 민간 구조대원들을 이끌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대형 재난 현장마다 늘 가장 먼저 달려갔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7년 대한항공(KAL)기 괌 추락 사고, 대만 대지진 및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그가 있었다.
차가운 물속과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그는 배우가 아닌 베테랑 구조사로서 목숨을 걸고 생존자를 탐색했다. 현장에서 밀려오는 육체적 한계와 비참한 광경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구조 활동 도중 본인 역시 극심한 과로와 위험한 환경 탓에 심장마비 위기를 겪는 등 문자 그대로 목숨을 담보로 한 사투를 벌여왔다.
어느덧 70대에 접어든 고령의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재난 소식이 들려오면 가슴이 먼저 뛴다고 고백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현장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현장에만 나가면 젊은 시절과 똑같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배우로서 벌어들인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구조 장비 확충과 민간 구조대 운영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정동남.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을 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그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인(義人)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