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표 아나운서 리춘희 불륜 저질러…’파문’
||2026.09.02
||2026.09.02
일본 국제정보지 ‘사피오(SAPIO)’가 보도했던 탈북 언론인 장해성 씨의 증언에 따르면, 리춘희는 과거 북한의 체제 선전을 총괄하는 핵심 권력 기구인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의 간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 내부 고발을 당했다.
통상 극단적인 도덕성과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북한 체제에서 방송원의 불륜 행위는 즉각적인 면직과 숙청, 지방 추방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결격 사유다. 해당 고발 내용 역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됐다.
그러나 보고를 접한 김정일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사건을 전격 덮고 무마하도록 지시했다. 지도부의 이례적인 은폐 덕분에 리춘희는 어떤 징계나 불이익도 받지 않고 간판 방송원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리춘희는 본래 연극배우를 지망했으나, 자신의 체형이 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1970년대 초 아나운서로 진로를 선회했다. 그의 남편은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기관지인 ‘민주조선’의 기자로 알려졌다.
조선중앙방송의 대표 방송원으로 자리 잡은 리춘희는 북한 전역에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특권을 누렸다.
평양의 최고 요지에 위치한 자택에서 거주하며 이탈리아제 고급 가구와 사치품으로 둘러싸인 채 풍족한 생활을 국가로부터 전액 보장받았다.
장씨는 “당시 60대 후반으로 정년 시기를 넘겼음에도 수개월간 자취를 감췄던 리춘희가 TV 화면에 돌연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도부의 유고나 중대 사태가 벌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며 “김정일의 남다른 신임과 총애가 있었기에 비상 국면에서는 반드시 그가 마이크를 잡았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세습 체제를 거치며 ‘노력영웅’과 ‘인민방송원’ 칭호를 독차지한 리춘희의 독보적인 위상은, 과거 최고권력자의 각별한 사적 비호와 체제 선전 도구로서의 절대적 신임이 맞물려 구축된 결과로 풀이된다.
